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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한 팁정보

간송 전형필 ★ 간송미술관

어제 티비에 '간송 전형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었습니다. 우리가 꼭 알아야할 정말 훌륭하신 분 입니다. 이번 기회에 간송미술관도 한번 가보시고.. 간송 전형필에 대한 공부도 간단하게 해보셨으면 합니다.


간송 전형필이야 말로 '숨은 영웅'이 아닐까 싶네요..


이런 사람이 문화부 장관 하고 그래야 하는데.. 분명 이 시대에도 간송 같은 순수한 열정을 가진 사람이 있을텐데 간신만 높은 자리를 차지 합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고 잠시 나마 감사한 마음이라도 가져봅시다.!






이분이 간송미술관을 만든 간송 전형필....


그는 바보같은 남자 입니다..







전형필 그는 요즘말로 흔히 말하는 금수저 입니다.


아니 그랬었지요.


그가 많은 돈을 어떻게 썼는지 알면..


지금 봐도 정말 이해가 안되는구나.. 생각되실 겁니다.


만약에 저라면 저렇게 못할거같아요.. 아마 대부분 그렇겠죠..





간송 전형필이 당시 기와집 열채값을 주고 사온게 무엇인지 아시나요.





그릇 하나.


"집안을 말아 먹을 철부지놈!!" 이런 소릴 들어야 했습니다.





간송 전형필이 비싼 돈을 주고 낡은 그릇과 그림, 책들을 사들이자 여기저기에 소문이 나기 시작합니다.


당시에는 전형필이 좀 이상한 취향을 가진 갑부 정도로 보였겠지요.





멀리서 그림을 들고온 남자가 간송 전형필에게 하는말..


"천원만 주세요.."



신기하게도 그는


"아니요, 오천원 드리리다."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 자기 딴엔 비싸게 부른다고 부른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는 알아서 다섯배의 가격을 쳐줍니다.





그걸 사서 산 값보다 더 큰돈을 들여서 손질을헀던 간송..



계속해서 줄어드는 재산..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한들 이렇게 알아서 비싼 돈을 주고 사들이니 잔고가 줄어갈 수 밖에요.. 하지만 그는 돈이 줄어드는것을 신경쓰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쌓여가는 그냥 오래된 물건으로 보이는 것들..




마지막 남은 재산인 논 1만 마지기를 팔아서 일본으로 건너갑니다.


논 한마지기는 보통 200평 정도로 계산 합니다.


그러니 논 2백만평을 팔아서 일본으로 간 것 입니다.



일제시대때 뺴앗긴 문화재를 사려고 그런것이죠..





"금싸라기 땅을 팔아서 사기 그릇을 사는 사람"





1936년 서울 어느 경매장에 나온 도자기..




오백원에 시작해서 열배가 넘는 가격.. 스무배 까지 넘어갑니다.




일본의 부자들이 침흘리며 가지고자 했던 그것..




백자...




14580원에 낙찰 되었습니다.


이게 얼마냐구요?


1930년도 쌀 한가마가 13원 이라고 합니다.


여관에서 하루 잘려면 1원에서 2원 정도.



좀 더 정확한 가격을 책정해보기 위해서 검색을 해보니..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것이 1936년 딱 간송이 저 백자를 구매한 같은 년도 입니다. 그때 쌀 한가마니는 22원 정도 했다고 합니다.


신발 한켤레에 7~8원 정도 입니다.



2005년도에 어떤 사람이 일제시대의 예금,채권,보험 등을 보상받지 못했다고 보상을 요구했을때, 한국은행은 일제시대의 쌀값을 현재 가격으로 추산해서 매겼다고 하는데요. 그동안 약 10만배의 물가상승이 있었다고 합니다.




대충 계산 해보면 간송 전형필은 저 백자를 14억 5천만원이 넘는 가격에 주고 산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때 당시에 서울에 땅을 샀으면 얼마나 샀을까요?


1936년 삼청동 쪽에 '삼화원(三花園)주택'이라는 최고급 거주지가 분양 되었는데.


당시 경성에서 가장 좋은 위치 중 하나였고, 총독부가 걸어서 5분, 경전버스전차가 정류하는곳, 북악산, 인왕산이 근처에 있고.. 주택단지 내에 유치원이 생길 계획이며, 주변에 당시 유명한 초중고등학교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강남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당시 이곳 땅값이 평당 40원이었다고 합니다. 그 부근 택지 시세는 50원~55원


계산하기 쉽게 50원이라고 따졌을때..


저 백자 하나 대신 땅을 샀으면


2천9백만평의 땅을 살 수 있었겠네요.. 그것도 강남같은곳을..





그는 당시 어마어마한 돈을 가지고 샀던 것들은 단 한점도 되팔지 않았습니다.



1938년에 서울 한복판에 최초의 사립 미술관인 간송미술관(당시엔 보화각)이 생깁니다.




그때는 보화각이라고 불렸는데 '빛나는 보물을 보아둔 집'이라는 뜻.




'고려청자'



'조선백자'



'추사 김정희의 예서'



'겸재 정선의 산수화'



'김홍도 신윤복의 풍속화'




그리고 한국전쟁이 발발 했을때.. 간송 전형필은 책 하나를 절대 품에서 놓치 않았는데요..




그것이 바로 '훈민정음 원본'



바보같은 남자.. 문화재를 목숨보다 아꼈던 간송 전형필은 전재산을 털어서 자신이 잘먹고 잘사는데 쓰지 않고.. 당시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해도 개의치 않으며 국보12점, 보물10점, 서울시 지정문화재 4점을 사서 모아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간송의 수집품을 거론하지 않고는 제대로 된 한국 미술사를 논할 수 없다."



간송미술관 약도. 성북초등학교 쪽에 있습니다. 자세한 정보




간송미술관 가는길 :   주소 - 서울 성북구 성북로 102-11 / (지번) 성북동 81-2
간송미술관 전화번호 :  02-762-0442

[간송미술관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