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 사건, 처음 듣는 분들은 에이 울나라서 이런일이??? 라고 하실 것 입니다. 후진국에서나 일어날 법 한 이런일이 한국에서도 있었다니.. 하신다면 우리나라는 당시에 인권 후진국이었고 지금도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 입니다.
그리고 형제 복지원 사건은 아직 진행중인 비극입니다. 아래 좀 더 자세히 말씀 드리겠지만 전라도 염전노예 사건만 보더라도 우리나라는 여전히 과거에 살고 있다고 봐야 합닏.
당시 정부는 길거리의 부랑자들.. 그리고 미관상 보기 좋지 않은 건물들도 빨리 치워야 했기 때문에.. 빗자루로 쓰레기 쓸어담듯 3500여명의 사람을 납치나 다름 없는 방법으로 데려가서 노예처럼 부려 먹었습니다.
그리고 죽은 사람이 공식적으로만 500명입니다. 비공식적으로 한다면 훨씬 많아지겠지요..
세월호로 인해서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사람이 총 295명인데.. 2배에 가까운 인원이 죄도 없이 착취당하다 갔습니다.. 형제복지원 이야기는 우리가 알아야하는 대한민국의 안타까운 역사 중 일부 입니다.
노예처럼 살다가 과자봉지 처럼 버려진 형제복지원 사람들…
형제복지원은 당시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부랑자 수용시설이었습니다. ‘수상하거나’, ‘거지같은 사람’은 모조리 잡아들여다가 강제 노역을 시키고, 반항 및 도주시 잡아서 심각하게 폭행을 했습니다.
그렇게 본보기를 보여야 ‘다른 노예’들이 도망을 못가니까요.
왜 형제복지원은 사람들은 무지막지하게 잡아들였고.. 그런 ‘권력’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우선 당시에 신나게 사람들을 잡아들여다가 노역을 시킬 수 있었던 것은 두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정부가 허용했기 때문이고, 거기다가 엄청난 ‘예산’을 지원 받았기 때문입니다.
1년 지원받은 예산이 20억인데.. 그때 20억이면 지금 얼마나 될까요..
검색해보니 1980년대 버스가 200원 미만이었고, 88올림픽 즈음에 짜장면 한그릇에 600~700원이었다고 합니다.
1988년에 대치동 아파트가 1억이었다고 해요. 지금은 얼마? –_-;;
대충 5~6배 정도의 차이가 난다고만 가정해봐도 지금으로 치면 한해에 100억이 넘는 돈을 예산으로 형제복지원이 받았던 것 입니다.
원래 형제복지원이 처음에 만들어진 목적은 꽤나 거창했습니다. 오갈곳도 없고 먹고살기 힘든 사람들을 모아서, 먹여주고 재워주고.. 기술도 가르쳐줘서 사회로 복귀시키겠다는 명분이었으니까요.
형제복지원에 그 큰 뭉탱이 돈이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정부, 대통령과 짝짝꿍이 맞았거나 그들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한마디로 형제복지원은 한 개인이 저지른게 아니라 나라가 저지른 사건 입니다.
‘생지옥’이었던 그곳!
그리고 철저하게 비밀이 쌓여있다가 많은 사람들이 아픔을 겪고나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것도 형제복지원에서 지원 사건이 알려지게 된 이유도, 그곳에서 어렵게 탈출한 사람이 이걸 밝히면서 알려졌지요.
탈출한 사람이 늦게서야 한명 생긴것은, 그만큼 경비가 철저했다고 해요. 개까지 풀어서 도망가는 사람을 잡았다고 하니까요. 미국 영화 노예12년 보면 아마 그 상황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당시에만 해도 검찰이 지금보다 나았나 봅니다.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두달간이나 망원렌즈(멀리 있는 곳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 렌즈)로 자료 수집하고 사건 준비해서 형제복지원을 덮치면서 관계자들을 검거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형제복지원에서 고통받은 사람이 그린 그림..
어린 나이에 이런것을 보고 자랐으니 얼마나 충격이 컸을까요..
저렇게 묶어놓고 학대했던 모양 입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가 쓴 일기.
형제복지원에 대해 수사를 하면 할수록 감자 캐듯 하나둘씩 계속 나왔다고 합니다. 형제복지원 원장이 그 사람들ㅇ을 노예처럼 부리면서 ‘개인사업’에도 써먹었다는 것 입니다.
하루 10시간을 일하고, 밥한그릇+김치 몇조각 이정도만 줬다고 하네요 ㅜ 단체로 데려가서 일을 시키면서 숙박도 필요하게 되니.. 노예들을 위해 기숙사 건물을 마련하는건 말이 안되고.. 축사 대충 개조해서 거기서 자라고 했다고 합니다.
형제복지원 원장 이름이 ‘박인근’ 입니다.
정부에서 준 지금돈으로 치면 100억~백 수십억 하는 그 보조금을 몰래 빼돌려서 아파트, 골프, 콘도 등 온갖 사치를 누렸는데.. 처벌은 커녕 ‘훈장’을 받았습니다. 만세!!! 대한민국 만세!!!!!!
국가 기록원의 형제복지원 사건 기록
주민등록증 검사해서 없으면 바로 끌고갔습니다. 말안들으면 암매장도 했구요.
12년간 형제복지원에서 죽은 사람은 공식적으로만 531명.. 일부 시신들이 의과대학에 해부 실습용으로 팔려나갔다고 하니 얼마나 죽었는지 정확히 알기도 힘들듯..
형제 복지원 원장 박인근 당시 모습
이 사람 1989년 9월 14일에 2년 6월형 받았습니다.
거의 학살를 해놓고 이정도. 우리나라 짱이죠. 재산만 해도 수백억일텐데..
우리나라는 사건 크게 저지른놈들이 교회에서 이미지 세탁하는거 아시죠? 형제복지원의 원장 박인근은 개신교의 집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
형제복지원을 다시 되찾아서 이름을 바꿔 운영하게 됩니다.
2014년까지만 해도 느헤미야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어요. 형제복지원의 원장 아들이 운영을 했고. 셋째아들은 ‘실로암의 집’을 만들어서 운영
첫째가 예전 형제복지원 법인을 가져간 모양인데, 예전에 기사를 보니 법인 규모가 1천억원대라고 ㅋㅋ
아들들아 아빠를 쏙 뺴닮아서, 셋째는 보조금 횡령으로 걸려서 징역 3년 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버릇 개 못주듯.. 박인근이도 또 한번 그 죄에 연루되었는데, 하나님의 은총으로 뇌출혈에 걸려서 재판은 받지 않았습니다.
아래는 형제복지원을 나온 사람이 쓴 일기 입니다.(이왕이면 컴퓨터로 크게 보세요)
자 이게 한국의 과거 일까요?
전라남도 신안군 염전노예 사건 기억하시나요?
영등포 역에 있는데, 재워주고 먹여주고, 일자리도 주겠다고 해서 목포로 갔더니.. 3개월만 일하면 된다고 해서 갔는데 연락도 못하게 잡혔다고..
전라도 염전노예 피해자들 중에서는 지적장애인, 시각장애인들도 있었습니다.
하루 다섯시간도 제대로 잘 수 없었고, 소금일은 물론이고, 벼농사도 지어야 했고, 건물공사, 잡일 거기다가 ‘주인님’들의 집안일도 했다고 합니다.
그 섬은 진짜 무서운 곳이었습니다. 섬주민들이 똘똘 뭉쳐서 누구네집 노예가 도망가면 바로 전화해서 잡아가도록 했다고 합니다.
4년동안 노예처럼 부려먹고 돈 떼먹은 염전 업주가 ‘집행유예’를 받았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감방에 가지 않고 그냥 일상생활 하면서 2년동안 사고만 치지 않으면 됩니다.
뒤늦게 뉘우쳤고.. 밀린돈을 다 줬고.. 피해자가 합의를 해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물론 합의를 했다면 참작해주는게 맞습니다. 그런데 줘야 할돈을 뒤늦게 줬을 뿐이니 그건 당연히 해야할 일이고.. 그간 노예처럼 학대하고 가둬놓은 죄는 왜 묻지 않는건가요?
이런 중범죄를.. 줄돈 줬다고 이렇게 집행유예로 끝내는 나라라니..
작년 7월달에는 '광주지검 해남지청'에서 무려 십년동안이나 장애인들을 노예처럼 부려먹은 업주를.. '증거 불충분'이라며 불기소 처분 했습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피해자들은 63명.. 제대로 처벌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한국은 어떻게 보면 커다란 형제복지원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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